영화 디거 리뷰 | [디거]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무엇을 계속 파고 있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다른 일을 하지 못한 건 오랜만이었다.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거 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방식의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사건이 빠르게 이어지지도 않았고, 인물이 자신의 감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보는 동안에는 몇 번이나 ‘내가 지금 이 영화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가 끝난 뒤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조금 다른 영화를 예상했다. ‘디거’라는 단어에서 땅을 파거나 무언가를 찾아내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제목이 영화의 내용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제목이 인물의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계속 파고들다 보면 원하는 것을 찾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의외로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었다. 넓은 자연이 계속 등장하는데도 이상하게 편안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자연이 등장하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반대였다. 넓은 공간에 사람이 혼자 놓여 있는 모습이 오히려 고립된 느낌을 줬다.
나는 이 부분이 꽤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화면이 어둡고 조용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공간 자체가 인물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인물을 대신해서 주변 환경이 그의 감정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내 경험이 떠올랐다.
나 역시 이미 끝난 일을 계속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이유를 찾으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이라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기억을 다른 방향으로 반복해서 보는 것에 가까워졌다.
《디거》를 보면서 그때의 내가 조금 겹쳐 보였다. 계속 무언가를 파고든다고 해서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는 끝까지 파헤쳐야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문제는 적당한 지점에서 손을 놓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영화 속 인물의 선택에 전부 공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영향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신념을 지키는 것과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한쪽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가장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이다. 영화는 인물의 선택을 충분히 설명하기보다는 관객이 그 행동을 바라보고 판단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그래도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이것이 영화의 단점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행동에 정답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판단할 여지가 생겼다. 다만 몇몇 장면은 인물의 감정이 조금만 더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설명을 모두 해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조금 더 있었다면 영화에 몰입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또 하나 솔직하게 말하면 영화의 느린 전개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조용한 분위기 자체는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간중간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이 조금 더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예술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느린 장면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난 뒤 기억에 남은 것은 지루했던 장면이 아니라 내가 영화를 보면서 했던 생각들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계속 파고 있는가?’
영화를 다 본 뒤 이 질문이 의외로 오래 남았다.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디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영화라기보다, 내가 어떤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 영화에 가까웠다. 모든 것을 끝까지 이해해야만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답을 찾는 것보다 그 질문을 내려놓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제목조차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오히려 그 제목이 가장 오래 남았다. 무언가를 파는 행위는 땅속에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지만, 너무 깊게 파면 자신이 만든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나는 이 영화가 바로 그 지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디거》를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았던 점
첫째, 빠른 전개를 기대한다면 조금 답답하게 느낄 수 있다.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영화보다는 인물과 공간을 천천히 바라보는 작품에 가깝다.
둘째, 등장인물의 행동을 영화가 전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왜 저렇게 행동했는지’를 스스로 생각하면서 보는 편이 좋다.
셋째, 혼자 조용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이 시끄럽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보면 영화의 느린 호흡이 단점으로만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넷째, 모든 인물에게 공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방법 중 하나다.
자주 묻는 질문
Q. 《디거》는 재미있는 영화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다’는 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보는 순간보다 보고 난 뒤 생각할 것이 더 많이 남는 영화에 가까웠다.
Q. 영화가 많이 어려운 편인가요?
줄거리 자체가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다만 인물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는 부분이 적어서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장면이 있다.
Q. 느린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볼 만한가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빠른 전개를 선호한다면 지루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인물의 행동을 생각해보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잘 맞을 수 있다.
Q.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요?
특정 장면 하나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떠올랐던 ‘나는 지금 무엇을 계속 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영화를 본 경험 자체가 내 개인적인 기억과 연결되어 오래 남았다.
《디거》는 보고 나서 바로 ‘좋은 영화였다’고 결론 내리기보다는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나에게는 완벽하게 공감되는 영화도, 모든 부분이 만족스러운 영화도 아니었다. 오히려 답답했던 부분과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더 오래 생각하게 됐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무엇을 느꼈는지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계속 파고드는 것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만든 구덩이에서 잠시 나와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