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더 브루탈리스트] 리뷰 (러닝타임, 몰입감, 아메리칸드림)

215분. 이 숫자 하나가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게 만듭니다. 《더 브루탈리스트》는 중간에 15분 인터미션(intermission)까지 포함하면 체감 상영 시간이 거의 4시간에 육박합니다. 솔직히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도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러 감상 후기를 종합해보고 나니, 이 영화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나와야 했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15분이라는 러닝타임, 그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다

《더 브루탈리스트》의 상영 시간은 단순한 수치가 아닙니다. 감독 브래디 코벳은 70mm 필름(70mm film)이라는 포맷을 선택했습니다. 70mm 필름이란 일반 디지털 영사 방식과 달리, 실제 필름 롤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촬영 매체로 화면 비율과 해상도가 훨씬 넓고 세밀합니다. 1960~70년대 대작 영화에 주로 쓰이던 방식인데, 현대 상업 영화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정도가 꾸준히 고집하는 포맷이기도 합니다.

여러 북미 관람객 후기를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웅장함'입니다. 인터미션(intermission), 즉 상영 중간의 공식 휴식 시간이 15분 주어지는데, 이 구조 자체가 《대부》나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고전 대서사시를 극장에서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숏폼 콘텐츠가 지배하는 지금 시대에, 관객에게 생각을 정리할 물리적 시간을 강제로 제공한다는 발상 자체가 일종의 도발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보기에 이 러닝타임은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일종의 질문입니다. "당신은 4시간을 버틸 의지가 있습니까?" 그 질문에 답하고 입장한 사람들이 압도적 몰입감을 경험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에드리언 브로디의 연기, 그리고 브루탈리즘 건축이 만나는 지점

에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한 라슬로 토트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건축 양식이 바로 브루탈리즘(Brutalism)입니다. 브루탈리즘이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고 장식을 최소화한 건축 사조로, 1950~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습니다. 어원은 프랑스어 '베통 브뤼(béton brut)', 즉 '날것의 콘크리트'에서 왔습니다. 겉을 치장하지 않은 투박한 물성 그 자체가 미학이 되는 방식입니다.

영화 속 라슬로 토트의 삶도 이 건축 양식과 정확히 포개집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키면서 자본과 권력 앞에서 어떻게 마모되어 가는지를, 콘크리트처럼 거칠고 군더더기 없이 보여줍니다. 에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는 대사보다 눈빛으로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한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자본가 역할을 맡은 가이 피어스와의 대결 씬은, 두 배우가 말 한마디 없이도 계급 권력과 예술적 자존심 사이의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한다는 점에서 압도적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연기는 스크린 크기가 클수록 훨씬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70mm 포맷으로 찍은 얼굴 클로즈업이 대형 스크린에 펼쳐질 때, 배우의 피부 결, 눈의 움직임, 미세한 근육의 떨림까지 모두 보입니다. 스트리밍 화면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밀도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기준으로 보면, 에드리언 브로디는 2003년 《피아니스트》 이후 두 번째 남우주연상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카데미 공식 자료에 따르면(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더 브루탈리스트》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의 실체를 해부하는 방식, 그리고 한계

이 영화가 단순한 이민자 성공담을 그리지 않는다는 건 초반 30분 안에 분명해집니다.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이란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미국 사회의 건국 신화입니다. 영화는 이 신화가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라슬로 토트의 경력을 통해 냉정하게 해부합니다.

자본가 해리슨 리 반 뷰런이 라슬로에게 건축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과정은 표면적으로는 후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술가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권력 구조입니다. 파트로나지(patronage), 즉 권력자나 부유층이 예술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창작의 방향까지 좌지우지하는 관계를 뜻합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온 이 구조가 20세기 미국 자본주의 안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 테제입니다.

후반부의 가학적 묘사와 마약 중독 서사에 대해선 시각이 갈립니다. 지나치게 집요하고 불필요하게 잔혹하다는 지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오히려 영화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브루탈리즘 건축이 콘크리트의 날것을 그대로 드러내듯, 영화도 권력에 의해 망가지는 인간의 내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장하면 거짓이 됩니다.

관객 반응을 데이터로 보면 흥미롭습니다. 로튼토마토 기준 평론가 지수는 88% 수준을 기록했으나, 일반 관객 지수는 그보다 낮은 편입니다. 이 격차가 바로 이 영화의 성격을 요약합니다. 예술적 완성도와 대중적 접근성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것입니다. 일반 상업 영화를 기대하고 입장한 관객에게 이 영화는 솔직히 가혹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흥행 분석에 따르면(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예술 영화 장르의 국내 관객 점유율은 여전히 전체의 5% 미만입니다. 이 숫자를 보면 《더 브루탈리스트》 같은 작품이 국내에서 얼마나 좁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 하나만 꼽는다면

스트리밍 시대에 극장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더 브루탈리스트》는 그 전제를 흔드는 작품입니다. 시네마틱 스펙터클(cinematic spectacle)이란 영화관이라는 공간과 대형 스크린, 그리고 음향 시스템이 결합되어야만 완성되는 시각·청각적 경험을 뜻합니다. 이 영화는 그 경험이 존재 이유 자체인 작품입니다.

아래는 《더 브루탈리스트》를 극장에서 관람할 때 체감 차이가 극대화되는 요소들입니다.

  1. 70mm 필름 특유의 광활한 화면비와 필름 그레인(film grain) 질감 — 디지털 변환본과 육안으로도 구별 가능한 차이가 있습니다.
  2. 15분 인터미션 구조 —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관람 자체를 하나의 의식으로 만드는 장치입니다.
  3. 건축물 내부를 촬영한 광각 씬 — 작은 화면에서는 그 공간감이 절반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4. 에드리언 브로디의 얼굴 클로즈업 — 70mm 포맷 + 대형 스크린 조합에서 눈빛 연기의 밀도가 극대화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극장 경험이 스트리밍보다 낫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포맷 자체가 관람 방식을 이렇게까지 규정하는 작품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더 브루탈리스트》는 그 드문 경우에 해당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브루탈리스트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지루하지 않나요?

A. 지루함을 느끼는 지점은 주로 중반부 이후, 주인공의 삶이 점점 무너지는 구간입니다. 정적이고 어두운 톤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상업 영화 속도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신체적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15분 인터미션이 중간에 제공되어 완충 역할을 하며, 극장에서 관람한 관객 대다수는 전체적으로 몰입감이 유지됐다고 평했습니다. 보기 전 컨디션 관리를 권합니다.

Q. 브루탈리즘 건축을 몰라도 영화를 이해할 수 있나요?

A. 충분히 가능합니다. 영화는 브루탈리즘 건축 지식이 없어도 주인공의 감정선과 계급 갈등을 중심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다만 건축 양식의 개념을 조금이라도 알고 들어가면, 콘크리트 구조물을 촬영하는 방식과 주인공의 내면 상태 사이의 연결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관람 전 브루탈리즘에 대해 간단히 검색해두는 것만으로도 감상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Q. 에드리언 브로디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를 받을 가능성이 있나요?

A. 에드리언 브로디는 이 작품으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으며,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3년 《피아니스트》 이후 20년 넘게 꾸준히 활동한 배우가 다시 이 무대에 선다는 점에서, 영화 팬들의 관심이 각별히 집중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Q. 스트리밍으로 봐도 괜찮을까요, 꼭 극장이어야 하나요?

A. 70mm 필름으로 촬영된 영화라는 점에서 극장 관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스트리밍은 화면 크기와 음향 모두에서 이 영화가 의도한 시네마틱 스펙터클을 온전히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건축물 내부를 담은 광각 씬이나 인터미션 구조는 극장이 아니면 그 의미가 상당 부분 희석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처음 감상은 극장에서 하길 권합니다.

정리하면, 《더 브루탈리스트》는 모두를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215분을 투자할 준비가 된 관객, 그리고 오락적 쾌감보다 시각적·철학적 충격을 원하는 관객에게만 열린 문입니다. 하지만 그 문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지워지지 않을 잔상을 남기는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70mm 필름 상영관이 주변에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예매부터 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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